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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나소닉(Panasonic), 불안한 전기차 배터리 사업 본문
일본에서 파나소닉(Panasonic)은 한국의 LG전자, 중국의 메이디(Midea: 2016년 일본 Toshiba 의 백색 가전사업 인수) 와 비슷한 백색가전기기를 만드는 이미지가 강한 기업이다. 하지만 한국 LG전자와 달리 배터리 분야에서도 아주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 한국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건전지나 축전지 등의 배터리 생산은 전통적으로 중소기업 사업영역이었음)
본래 파나소닉이 생산하는 배터리 대부분은 방전되면 버리는 1차 전지였지만, 소니(Sony)가 1991년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던 반복 사용이 가능한 2차 전지 (리튬이온 배터리) 출시에 위협을 느끼면서, 파나소닉도 2차 전지를 생산하게 되었다. 결국 일본 내 치킨게임에서 파나소닉이 승리했고, 현재까지 배터리 업체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 소니는 파나소닉 때문에 수익이 적은 배터리 생산 사업을 접고, 현재는 다른 업체로부터 OEM으로 납품받아 자사 상표만 찍어서 판매 중)
※ 소니와 파나소닉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차세대 배터리 기술 (예: 전고체 배터리) 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비용을 적게 쓰고도 안정적으로 좋은 품질의 배터리를 누가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승자독식 세계의 생존자가 될 뿐이다.
이러한 파나소닉의 배터리 생산 기술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 규모의 대기업이 대량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국과 중국의 대기업들이 차량용 배터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파나소닉보다 훨씬 늦은 2010년 전후이다. (※ LG화학 홈페이지에 따르면, LG화학이 세계 2번째로 리튬배터리 양산에 성공한 것은 1999년이고, 전기차용 배터리 양산은 2010년 출시된 미국 시보레 볼트에 납품을 시작하면서였다고 기재됨. 참고로 현재 차량용 배터리 세계 1위 업체 중국 CATL이 설립된 해는 이보다도 더 늦은 2011년. 마치 테슬라가 파나소닉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하니까, LG화학이 따라서 달리기 시작하고, 그 뒤에서 CATL 이 허겁지겁 신발 신기 시작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테슬라 자동차와의 첫 만남
지금은 전기차(EV)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테슬라(Tesla) 자동차에 일론 머스크 (Elon Musk)가 사장으로 부임한 건 2007년도 이다. 당시 일론 머스크는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물색해야만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일본의 파나소닉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만한 다른 전기차용 배터리 대량생산 업체가 없었다 (중국 CATL 은 아예 세상에 없었고, 한국 LG 도 2차전지 양산 초기 기술 수준). 당시 파나소닉은 더 가벼우면서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용 원통형 2차 전지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양산 체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일본 노트북 브랜드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배터리 생산량 조절에 고민이던 중, 테슬라의 제안을 받고 기존 노트북용 원통형 배터리를 그대로 납품하기로 한 것이 현재까지도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테슬라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한 파나소닉은 약 2년간 시설투자를 통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납품을 시작하게 되었고, 2015년에는 미국 네바다에 새로운 테슬라 생산공장이 지어지면서, 아예 테슬라 공장 안으로 파나소닉이 들어가 배터리 생산을 하게 되었다. (※ 2015년 당시 테슬라는 공장 시설과 공간을 현물 투자하고, 파나소닉은 배터리 생산설비를 투자하였는데, 당시에 테슬라 판매량은 현재와 비교하면 아주 미미했었기 때문에, 일본 파나소닉 입장에서는 미래를 본 투자였지, 실제 사업성은 없었다고 함)
현재도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공급처 이지만, 더이상 독점적 위치는 아니다. 중국 CATL도, 한국 LG에너지솔루션도 테슬라에 납품하고 있다. 더구나 매년 테슬라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테슬라의 성장 초기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생산설비를 투자하고, 테슬라가 2010년에 나스닥(NASDAQ)에 처음 상장할 때는 약 3천만 달러를 들여 지분인수까지 했던 파나소닉 입장에서는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업계에서 알려진 바로는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배터리 공급으로 흑자 전환된 것은 불과 지금부터 몇 개월 전이었던 2020년 하반기부터이며, 지난 10년 이상 계속 적자였다. 필자 생각에 일본 파나소닉은 미국 테슬라에 이용당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테슬라 자동차와의 관계 악화
일본 언론에 따르면, 파나소닉과 테슬라의 관계 악화는 이미 201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파나소닉과의 불화설에 대해 테슬라 측 주장은 파나소닉에게 배터리 증산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파나소닉의 경영진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 지나질 정도로 신중한 일본식 경영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 일론 머스크는 여러 미국 언론 매체를 통해 파나소닉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런 테슬라 측 언론 플레이에 파나소닉 경영진도 불만이 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파나소닉 측 주장은 반대이다. 오히려 파나소닉에게 제시 했던 전기차 생산계획을 테슬라 측이 지키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파나소닉의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 여담이지만, 테슬라는 일론머스크라는 일종의 한국식 오너 경영을 하는 회사이고, 그렇지 않은 보수적 일본 회사에서의 장기 적자사업에 대한 복잡한 의사결정 방식은 필연적으로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결국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던 배터리 사업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2019년 1월 일본 도요타(Toyota) 자동차와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하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테슬라와 파나소닉 간의 독점적 대우는 파기되게 되었다. 더구나 파나소닉은 2021년 4월, 2020년 annual report 를 공개하면서, 파나소닉이 보유하고 있던 테슬라 주식을 2020년 하반기에 전량 매도했다고 발표하기까지에 이른다. 사실 테슬라 주식 매도를 통해 파나소닉은 꽤 많은 매매차익을 보았을 것으로 언론에 다루어졌지만, 현실은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12년간 투자하면서 본 손실을 메꿀 만큼은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다. (※ 파나소닉이 테슬라 증시 상장할 때 매입가는 주당 21.15달러에 총 매수 주식은 140만 주)
그런데 일본 내에서는 파나소닉과 도요타 자동차와의 합작회사에 대해서도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다. 일단,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파나소닉의 기업문화로는 도요타 자동차의 강압적인 비용 절감에 대한 갑질을 버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기계쟁이(자동차)들과 화학쟁이(배터리)들이 함께 일해서 꾸준히 좋은 관계가 지속된 성공사례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일례로 기계쟁이들은 설계의 최적화, 생산의 단순화, 새로운 소재로의 변경 등으로 계속적인 비용절감이 일상화되어있지만, 화학쟁이들은 화학적 소재를 바꾸지 않는 한 비용절감은 어렵다고 보는 업계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파나소닉의 내부 문제
파나소닉의 2020년 annual report 에는 2022년 4월까지 지주회사를 통한 계열사 재편 계획이 나와 있는데, 차량용 배터리를 포함한 자동차 사업부를 파나소닉으로부터 분사하여 별도 계열사로 만들겠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의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하고,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사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 일본 기업은 이런 사업 분사 계획을 무려 2년전에 공개)
다만, 일본 업계 의견은, 파나소닉이 10년 넘게 계속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배터리 업체와는 달리, 파나소닉은 배터리 사업 확장을 위한 추가 투자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도요타와 새롭게 설립한다는 배터리 합작회사도 파나소닉이 2017년 4월, 중국 다롄에 지은 배터리 공장 설비를 일본으로 이전하는 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한데다가, 얼마전 주주총회에서도 향후 주력사업으로 현재도 흑자가 나고 있고, 향후 전망도 밝은 편인, 유통과 물류용 냉장장치 등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발표되고, 전기차 배터리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2021년 6월, 파나소닉은 사장이 Yuki Kusumi 로 바뀌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신임 사장은 전임 사장과 이사회로부터 파나소닉의 적자사업 정리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사실 Kasumi 사장은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하기 직전까지 파나소닉의 자동차 사업부 (자동차 전장과 전기차 배터리 담당) 에서 근무했다. 사장 추천과 임명 및 해임 권한을 가진 이사회가 Yuki Kasumi 를 사장으로 추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신임 Yuki Kusumi 사장의 2021년 6월, 파나소닉 사업전략에 대한 미국 Bloomberg TV 인터뷰 동영상 (전기차 배터리는 1:45부터) : https://youtu.be/6p8YIsyH9KA
그래도 역시 파나소닉
이런 와중에도 2020년 9월 개최된 테슬라 배터리 데이 (battery day)에서 사장 일론 머스크는 2022년부터 새로 출시되는 SUV 전기차 모델에 일본 파나소닉과 공동개발한 4680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파나소닉도 바로 다음 달인 2020년 10월, 테슬라 납품용 4680 배터리를 생산한다고 발표하면서, 향후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는 배터리 개발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 4680 숫자의 의미는 아래 사진처럼, 구경 46mm, 높이 80mm 를 의미한다. 일론 머스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서는 이런 직관적인 이름이 많다. 예를 들면, 스페이스X 의 로켓, Falcon 9 의 '9' 는 자체 개발 Merline 엔진을 9개 장착했다는 의미.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버전의 의미가 아니다.
4680 배터리는 지금까지 양산하던 2170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5배, 출력은 6배 우수하다고 한다. 2021년 1월에 개최된 CES 2021 에서 한국 LG에너지솔루션도 4680 배터리 시제품 생산까지는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 같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 국내 언론들 이야기와는 달리, 현실은 아직도 일본 파나소닉이 다른 경쟁사보다 몇 발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공급하는 배터리는 원형 (건전지 모양)이고, 도요타에 공급하는 배터리는 각형 (슬림한 상자 모양) 이다. 생산 공정이 달라 비용절감을 위해 여러가지 형태의 배터리를 모두 양산하는 경우는 업계에서 흔한 경우는 아니다.
※ 전통적으로 백색가전 사업 매출이 많았던, 파나소닉은 테슬라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하던 2007년 전후부터, 가전기기와 같은 B2C (개인고객 대상 사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B2B (기업고객 대상 사업)로 전환하는 시기였다고 한다. (한국의 LG전자도 몇 년 전부터 비슷한 사업전환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 LG-Magna 자동차 전장 사업)
※ 일본 내 파나소닉 배터리 홍보용 캐릭터 로봇, '에볼타NEO' 를 이용한 파나소닉 배터리 홍보 동영상 : https://youtu.be/WW2covEGJ7A
※ 배터리 업계에서는 누가 차세대 배터리 (예: 전고체 배터리 등)를 처음 개발하던, 결국은 사업적으로 1등 배터리 공급업체는 일본의 파나소닉과 중국의 CATL 둘 중 한 곳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제까지 배터리 개발 역사를 보더라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승자는 언제나 생산원가 절감과 사용품질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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