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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곰탕, 설렁탕, 국밥 본문

일상(Life)

할머니의 곰탕, 설렁탕, 국밥

roap 2022. 8. 20. 18:30

어린시절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할머니는, 태어난 곳은 개성이고, 결혼과 동시에 평생을 서울에서 사셨다. 일제 시대였던 할머니의 결혼 당시만 해도, 경성 (서울의 일제시대 이름) 이 개성만도 못해 크게 실망했었다고 하셨다. 그 당시는 개성이 행정구역 상 경기도에 속했던 모양이다. 결혼 때문에 처음 서울로 올 때, 혼수품을 가지고 개성에서 배를 타고 한강 하구에서 거슬러 올라와 지금의 서울 마포 근처 (당시 마포나루) 로 한나절도 안되어 도착하였다고 한다. 구글 지도로 당시 뱃길의 거리를 측정해보니, 50km 도 안되는 거리이다.

(참고로 할머니 집안은 휴전선이 아직 없던, 1948년에 모두 개성에서 서울로 이주. 당시에 이미 공산정권이 전쟁준비를 위해, 개인과 자산가들의 재산을 뺐기 시작해서, 그나마 남은 재산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함께 개성을 떠났다고 함. 당시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자산가로, 현재의 '아모레퍼시픽' 의 창업주, 서성환 사장이 있음. 서울로 이주 후, 2년도 안되어 6.25 전쟁/한국전쟁이 발발)

결혼과 함께 서울에서 살게 됐지만, 남편의 이른 사망으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할머니는 남은 재산과 할머니쪽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으로 지금의 서울 왕십리 근처에서 음식점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장사는 잘됐다고. 자식들이 모두 출가한 후로 힘들어서 그만두었지만. 아무튼 그 때문인지 이런 저런 음식의 조리법에 좀 까다로우셨고, 본인이 생각하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에 어긋난 음식을 몹시 싫어 하셨다.

내 할머니의 지론(持論)에 따르면, 곰탕과 설렁탕 그리고 국밥은 아래와 같이 서로 다른 음식이다. (어디까지나 할머니 개인의 의견)

전형적인 곰탕 모습

1) 곰탕 : 소의 살고기만을 오래 끓이면서 국물에 떠오르는 고기의 핏물은 모두 걷어낸 후, 기름기 없이 소금이나 국간장 간만으로 맑게 내놓는 음식으로, 비교적 비싼 음식. 고기에서 나는 누린내가 전혀 없어서 귀한 손님이 오거나 제사를 지낼 때 주로 만들었던 고급 영양식으로 대부분 놋쇠나 사기 그릇에 담아냈다. 돈 없는 사람은 못먹었다고 한다. 국물이 식어도 기름이 뜨지 않았다고.

2) 설렁탕 : 내장을 손질한 소 한마리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큰 솥에 넣고 불순물을 제거하며, 한나절 정도 끓인 국물음식. 주로 기후제나 마을의 큰 행사에서 많은 인원에게 음식 대접을 해야할 때 만들었다고 한다. 살고기와 뼈, 손질한 내장이 모두 들어가 있어서 국물이 탁하고 고기의 누린내가 나지만, 육식이 드물었던 시대에는 호불호가 없는 잔치 음식이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몽골식 조리법의 한식.

3) 국밥 : 정육점에서 팔고 남은 소의 저렴한 부위 (주로 내장과 뼈) 를 상하기 전에 모조리 솥에 넣고 오래 끓여서 반찬없이 밥에 부어 후루룩 퍼먹는 저렴한 음식. 주로 돈없는 사람들이 고기 비슷한거라도 먹고 싶을 때 먹었다고 한다. 할머니 장사 시절에는 국밥 3~4 그릇 가격으로 곰탕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다고. 국밥은 식으면 식감이 변하고 누린내가 심해져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기 때문에 일제시대 때, 국밥 배달이 많아지면서 온도 유지 방법으로 뜨거운 뚝배기에 담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위에 언급한 구분 방법은 어디까지나 내 할머니 개인의 생각이다.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리법과 재료사용의 경계가 흐려지고 지금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할머니 말로는 부산에서 많이 먹는 돼지국밥은 일단 위에서 이야기한 몽골식 소고기 국물요리 구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비싼 소고기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돼지고기로 남쪽 지방에서 만든 아류 음식이라고 생각 하셨다. 그리고 경기도 곤지암 지역에서 많이 먹는 소머리곰탕이라는 음식도 족보가 없는 음식으로, 소머리 수육을 넣은 곰탕이 아니고, 그냥 국밥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나의 할머니는 돼지고기를 거의 안드셨다. 드시고 계시던 한약 때문이기도 하고 (한약을 먹을 때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함), 잘 드시던 않던 식재료라, 돼지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할머니 말로는 개성에서 살던 어린시절 (1920년대), 주변에서 순대말고는 돼지고기 먹는 사람을 거의 못봤다고 한다.

 

+ 곰탕/설렁탕/국밥 은 몽골 영향을 받은 한식이다. 따라서 외국인 중에서도 중앙아시아계가 대체로 맛있다고 느끼는 한식 중에 하나이다. 참고로 중앙아시아계와 북방계 아시아인들은 평소 자극적인 양념류를 전혀 접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식에 들어가는 고추, 된장, 마늘 등의 자극적인 식재료나 이런 걸로 만든 발효 장류가 음식맛을 지배하는 한식을 먹으면, 대체로 배탈이 나거나 설사를 한다고 하니,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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