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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인쇄기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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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인쇄기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

roap 2022. 6. 19. 18:30

ASML 의 가장 최신 EUV 장비 모습

흔히, 반도체 장비회사로 많이 알려져 있는 ASML (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Lithography)은 쉽게 설명하면, 인쇄기 업체이다. 다만 인쇄대상이 종이가 아니라 반도체 웨이퍼(wafer) 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실 만드는 장비의 외관도 대형 인쇄기처럼 생기기도 했다.

가전제품 회사의 자회사로 시작

ASML 은 1984년, 네덜란드의 가전기기 업체, 필립스 의 자회사로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반도체용 리소그래피(Lithography: 판화/노광) 기술을 가진 ASMI (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International) 에 필립스가 자금과 시설투자를 하면서, 만들어진 반도체 장비제조 전문업체가 ASML 이다.

※ 필립스 (Philips) 는 오랜 기간 가전기기 업체였으나, 현재는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용 진단기기 업체로 전환했다. 한때는 반도체 제조 사업도 큰 비중을 차지한 적이 있고, 당시 반도체 제조장비 전문업체 ASML 도 가전 및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업체 NXP 도 자회사로 두고 있었으나, 분사와 함께 별도 증시 상장하면서 모두 지분을 처분했다고 한다. 필립스는 일본의 SONY 와 함께 세계 최초로 광학기술을 이용한 저장매체 CD 와 이를 저장/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네덜란드 명문 축구클럽, 아인트호벤(PSV) 이 본래 필립스 사내 축구클럽이었다고 한다. PSV 는 Philips Sport Vereniging, 즉 '필립스 스포츠 조합' 이라는 의미의 약자표기이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도 아인트호벤 축구팀의 구단주는 필립스이다.

1984년 당시 필립스 전자 뒷편 간이 오피스를 사용했던 ASML 모습 (왼쪽), 현재의 ASML 본사 모습 (오른쪽)

사실 반도체 리소그래피 장비는 1970년대에 미국의 방산용 장비 개발을 위해 처음 연구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쓸만한 장비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해서 군사적 목적이 아니면 민간에서는 기술투자가 쉽지 않았다. 그 뒤로 수십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도 이런 장비개발의 어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반도체 제조사들보다도 오히려 장기 투자여력이 안되면 뛰어들기 힘든 장비제조 분야가 반도체 리소그래피 분야이다. ASML 은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자금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 독점

아무튼 ASML 은 창업한지 4년만인, 1988년 (한국에서는 올림픽이 있던 해) 에 직원이 100명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고, 창업한지 10년이 조금 넘은 1995년에는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ASML 에 근무하는 직원은 이미 3.4만명이 넘었고, 현재 전세계에서 EUV (Extreme UltraViolet) 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드는 단 1개 밖에 없는 독점기업이 되었다. 본래 ASML 의 EUV 광원 장비는 미국 Cymer 가 제작하여 공급했으나, 2012년 10월 자회사로 인수하면서 ASML 의 EUV 반도체 생산 장비 독점시대가 시작됐다.

※ ASML 의 자회사 Cymer 의 EUV 광원에 대한 기술적 원리 설명 동영상 : https://youtu.be/5yTARacBxHI

※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첨언을 하자면, EUV 장비를 제외한 다른 반도체 리소그래피 장비는 일본의 Nikon 과 Canon 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ASML 이 EUV 기술을 먼저 선점하여 현재와 같은 독점적 위치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대만의 TSMC 라고 한다. 얼마전 일본 정부가 엄청난 혜택을 주며, 대만의 TSMC 을 일본으로 끌어들인 것도 이러한 여러가지 과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실제 ASML 의 2021년 매출을 기준으로 EUV 장비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가 되지 않는다. 현실은 DUV (Deep UltraViolet) 장비가 70% 이상 판매되고 있는데, DUV 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에 사용되는 반도체 생산에 주로 사용되는 장비이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주로 사용되는 반도체는 EUV 장비로 생산된다.

2022년 기준, ASML 의 EUV 장비를 살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서 딱 5개 밖에 없다.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Intel, Micron. 이 5개 회사 중 가장 많은 (2021년 기준 약 40%)  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사가는 회사는 대만의 TSMC 이다. 몇년전부터 미국의 기술제재로 EUV 리소그래피 장비의 중국 수출이 금지되기는 했지만, DUV 장비는 수출 금지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ASML 입장에서 중국 반도체 회사들도 여전히 큰 고객 중 하나이다. 

EUV 리소그래피 기술은 사실 반도체라는 응용분야 보다는 물리학의 광학을 원천기술로 발전하였는데, 현재 기술 수준은 원자 1개 위에 인쇄를 할 수 있는 초고정밀 수준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관련분야 종사자들은 인류에 기여한 공로 수준으로 볼 때, 수년내에 EUV 관련 기술 쪽에서 노벨물리학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반도체 리소그래피용 EUV 사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85년 관련 논문을 발표했던, 일본 NTT 에 근무하던 Hiroo Kinoshita (키노시타 히로오) 박사라고 한다.

ASML 이 보유한 광학 리소그래피 (Optical Lithography) 기술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 그리기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와 붓과 물감 그리고 붓을 움직여 선과 면을 그리는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한다. 반도체 리소그래피에서는 종이 역할을 반도체 웨이퍼가, 물감 역할은 EUV 나 DUV 같은 광원이, 붓 역할은 거울(반사경)이, 그리고 손 역할은 반도체 웨이퍼를 움직여 회로 패턴을 그려지게 하는 고정밀 구동장치 (직교 로봇) 로 생각할 수 있다.

숨어 있는 장인 기업

ASML 은 여기서 물감과 손 역할을 하는 장치는 모두 자체 개발하고 있지만, 붓 역할을 하는 거울(반사경)은 독일의 ZEISS 에서 만든 거울을 사용한다고 한다. 현재 EUV 리소그래피용으로 사용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평평한 거울'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독일 ZEISS 가 유일한 업체이다. 더구나 EUV 는 워낙 미약한 미세 광원이어서, 대부분의 물질에서 반사하지 않고 그냥 흡수되어 버린다고 한다.

※ 이 독일회사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회사인데, 바로 대부분의 고가 카메라에 사용되는 렌즈를 만드는 곳도 이 회사 ZEISS 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광고 문구에 독일 칼자이스 렌즈 사용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기도 함)

독일 Zeiss 사의 EUV 리스그래피 장비 관련 광학장비 설명 (출처: Zeiss 홈페이지)

ASML 이 생산하는 EUV 리소그래피 장비 크기는 해상 물류용 표준 컨테이너 1개 정도의 크기이며, 장비 내부는 반도체 웨이버를 투입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진공으로 밀폐되어 있고, 처리 용량은 하루에 웨이퍼 3천개 정도라고 한다. 보통 웨이퍼 1장당 수백개 반도체 칩이 생산되므로 하루에 수십억개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셈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ASML 의 EUV 장비는 대당 2억달러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알려진 가격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ASML 2022년 1분기 실적 설명 동영상 : https://youtu.be/j1B-6UpJQzo

※ 위 동영상을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ASML 의 가장 큰 고객은 여전히 중국이다. 

EUV/DUV Lithography 기술 관련 자료를 찾다보면, 정작 ASML 의 기술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쓸만한 자료는 대부분 독일 Zeiss 사에서 만든 자료들뿐이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보면, ASML 은 그냥 시스템 조립과 통합/판매 업체일 뿐이고, 핵심기술은 모두 Zeiss 사가 보유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정도이다. 이 블로그 글은 ASML 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있지만,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Zeiss 라는 업체를 다루지 않을 수 없어서, 일부 Zeiss 사의 기술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양해 바란다.

ASML 의 EUV 노광장비는 사실상, 미국 광원기술, 독일 광학기술, 네덜란드 통합 제어기술의 오랜 노하우가 쌓여서 만들어진 합작 예술품에 가깝다. 어떤 특정 나라가 독점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넘어 선, 과학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이다.  

독일 Zeiss 의 EUV 리소그래피 기술 설명 동영상 : https://youtu.be/z6c3vzIGo9o

※ 위 동영상에 따르면, EUV 를 광원으로 하는 리소그래피 기술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일본 쓰쿠바에 있는 NTT 물리학 연구실의 실험결과를 1985년 논문으로 발표했던, Hiroo Kinoshita (키노시타 히로오. 현재는 일본 효고대학 교수) 라고 한다. 당시에도 반도체 생산을 위한 리소그래피 기술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정밀한 X레이를 광원으로 사용했다. 당시 발표한 논문 결과에 대해서 그때까지 가능한 기술로는 EUV 가 가진 특성 때문에 논문의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고 하며, 학계에서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제 3의 연구자가 Hiroo Kinoshita 의 실험내용을 재현하는데 성공하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왼쪽) 반도체 회사별 EUV 장비 보유대수, (오른쪽) ASML 장비증가에 따른 TSMC 매출증가 연관성 (출처: JBpress,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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