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Space)

일본 제트엔진의 역사, IHI 의 XF9 엔진

roap 2022. 7. 15. 18:30

일본 IHI (이시카와지마 하리마 중공업) 는 한국의 현대중공업이나 두산중공업 같은 일본 업체로, 창업한 지 무려 170년 (1853년 12월 창업) 이 되어가며, 도쿄의 남쪽 항구 (당시 지역명이 이시카와지마) 에서 일본 최초로 서양식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IHI 는 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선박과 군함 제조로 큰돈을 벌었고,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군에 전투기를 제작하여 공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전투기 설계는 다른 회사). 전쟁이 키워준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현재 직원수는 3만명이 조금 안되고, 산업용 중장비 사업과 발전소에 들어가는 증기/가스 터빈 등의 에너지 분야 사업 그리고 전투기 엔진과 같은 방산 분야 사업이 가장 크다. 연매출 규모는 10 - 15조원이며, 주가는 큰 성장없이 주당 2000 - 6000엔 사이를 장기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1903년 IHI 회사 전경 그림 (왼쪽), 현재 IHI 의 항공기 엔진 생산 공장 모습 (오른쪽)

※ IHI 가 창업한 1853년은 일본에서 꽤 역사적인 사건이 있던 해로, 그해 7월 미국 해군의 페리 제독이 증기동력식 철재 선박, 일명 쿠로후네(검은 배)가 일본 도쿄의 항구에 (당시 에도) 무력으로 들어왔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에도항에 들어온 미국 선박은 총 4척이었는데, 모두 대포를 탑재하고, 증기 동력식 검은색 군함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연기를 내뿜는 이런 철재 선박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 당시 한국은 조선말기 철종시대이며, IHI 가 창업한 해보다도 더 나중인 1856 - 1861년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제작됐다.

IHI's annual report 2021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

 

일본 최초의 양산형 제트엔진, NE20

기록에 따르면, 일본 최초의 양산형 제트엔진은 1945년 6월, IHI 가 새로운 전투기용으로 제작한 NE20 이다. 당시 일본은 동남 아시아 식민지까지 날아가야하는 장거리 비행을 하기에는 높은 고도에서 산소부족으로 연비가 떨어져 기존 프로펠러형 엔진을 계속 사용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동맹국이었던, 독일이 제트엔진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독일이 필요로 하던 중소형 초계함(전투용 선박)의 디젤엔진 기술을 독일에 주고, 일본은 독일의 제트엔진 기술을 받았다고 한다. 1944년 7월, 드디어 염원하던 독일의 전투기 Messer Schmidt Me 262용 제트엔진 BMW003 설계도를 일본으로 들여 오게 되었고, 이 설계도를 참고하여 개발한 것이 NE20 이었다 (NE20 이전에도 NE0 부터 NE15 도 있었음).

NE20 제트엔진 도면과 실물 모습

※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제트엔진 설계도를 독일로부터 가져오기 위해, 1944년 4월 일본 해군은 직접 잠수함을 타고 일본-독일 왕복구간을 3개월에 걸쳐 운항했는데, 설계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만-필리핀 사이에 있는 Bashi 해협에서 미국 해군에 발각되어 침몰. 하지만 침몰과정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중사가 설계도의 일부를 가지고 일본에 복귀하면서, NE20 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 기술이었던 독일 제트엔진기술을 모방하여 수십대의 NE20 엔진을 제작하였으나, 제대로 성능이 나오는 엔진은 2~3개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NE20 제트엔진을 탑재한 일본 최초의 전투기, Kikka (橘花) 는 1945년 8월 7일, 도쿄 인근에 있는 일본 해군 항공대 키사라즈 기지에서 약 12분간의 첫번째 비행시험에 성공하였으나, 5일 뒤에 치루어진 2차 시험에서는 당시 말레이시아로부터 조달하던 원유 수급과 품질에 문제가 많아 연료계통 문제로 이륙에 실패하였다. 2차 비행시험 3일 뒤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게 되면서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첫번째 제트엔진 전투기 실용화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 1945년 8월 6일, 일본 서부의 히로시마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사흘뒤인 9일에는 좀 더 서쪽에 있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도쿄 인근 지역에서는 NE20 제트엔진 탑재 전투기 실험이 계속된 것이다.

승전국 미국은 일본에게 7년간 제트엔진 개발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제작 중이었던 NE20 은 기술유출을 우려해 일본 스스로 모두 파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은 당시 일본군이 농장의 창고로 위장했던 NE20 생산공장에서 3대를 빼내갔다고 하는데, 2대는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이 현재 보관 중이고, 1대는 1973년 일본 항공자위대 요청으로 일본에 반환되어, 일본 정부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 간혹 일본의 제트엔진 기술은 극히 최근에 미국에서 구걸해 받은 것처럼 근거없이 말하는 유튜버들이 있는데, 모두 거짓말이다. 일단 제트엔진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며, 이미 1700년대말부터 가스연소를 통한 동력발생장치로 알려져 있던 유물 같은 기술이다. 엔진 제작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 의해 완성도가 결정되는 일반 내연기관 기술일 뿐이다. 처음 항공기용으로 제트엔진을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Maxime Guillaume 이 1921년 제작한 축류식 터보엔진 (터보와 터빈은 같은 말이다) 이었고, 실제로 전투기에 달아서 비행에 성공한 것은 1939년 8월, 독일 Heinkel 이 제작한 He178 이었다. 일본의 경우 1945년 패전이후 본격적인 제트엔진 개발은 그 뒤로 10년 뒤인 1955년 NJE (Nippon Jet Engine) 합자회사가 설립되면서 부터 이며, 그 뒤로 5년이 지난해부터 XJ3, J3, YJ3, F3, XF5, F7, XF9 등 약 8년 단위로 계속 새로운 제트엔진을 자체개발하여 발표하고 있다. (1955년 한국에서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가 출시된 해)

NE20 제트엔진 (현재 미국 스미소니언 전시) 및 지상시험 모습 (왼쪽) & NE20 탑재 전투기 (Nakajima Kikka) 모형 (오른쪽)

※ BMW003 제트엔진 모형 동영상 : https://youtu.be/hKX7ldMdwfA

 
※ 일본 최초의 제트엔진 전투기 Kikka 와 제트엔진 NE20 관련 동영상 (일본어 자막) : https://youtu.be/eCvfKmVYiBI

 
 
 
 
 
 
 
미국으로부터의 군용 제트엔진 개발 제한이 풀린 뒤, 1955년 12월부터 IHI 와 여러 일본 기업이 합자하여 만든 회사 NJE (Nippon Jet Engine) 을 통해  다시 전투기용 제트엔진 개발이 시작되었다. 1961년에는 전후 첫번째 양산형 제트엔진 J3 가 완성되었고, 그 뒤로도 미국의 GE,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공동으로 민항기용 제트엔진 공동개발뿐만 아니라, 전투기용 제트엔진도 위탁생산 등을 꾸준히 해왔다.
항공기 엔진은 안전 확보를 위해, 일정 운항기간이 지나면 정비/수리를 꼭 해야 하는 특성상 MRO (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 유지보수, 정비) 사업도 꽤 큰 시장을 이루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 아시아 지역 항공기 MRO 사업은 일본이 독점하고 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대한항공 등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인천공항 인근 영종도 지역에 항공기 MRO 단지 조성중)

※ 한국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본의 록히드마틴 스텔스 전투기, F-35A/B 는 대부분, MHI (미쓰비시 중공업) 가 일본 나고야에서 조립생산한다. 록히드마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의 F-35 모두 일본에서 MRO&U (Maintenance, Repair, Overhaul and Upgrade :  유지보수, 정비, 업그레이드) 한다고 한다. F-35 용 엔진 F135 도 일본 IHI 가 정비하는 것 같다. (출처: https://www.f35.com/f35/global-enterprise/japan.html) 참고로 한국이 구매한 F-35A 는 모두 미국산이다.
+ 2022년 1월, 한국이 운용중인 F-35A 가 착륙과정에서 앞쪽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아, 동체 착륙을 한 사고가 발생. 록히드마틴과의 계약에 따라 동아시아 F-35 의 MRO 를 맡고 있는 일본 나고야시에 있는 MHI 에 수리요청을 했으나, 한국도 일본도 모두 내켜하지 않아 답보 상태. 대안으로 호주 Williamstown 에 있는 영국 방산업체, BAE Systems 의 MRO 센터로 보내어 수리하는 방안을 모색 중. 2022년 하반기 기준, 미국을 제외한 F-35 중정비·수리가 가능한 MRO 센터는 이탈리아, 호주, 일본 총 3개국에만 있으며, 경정비는 한국도 하고 있음.

IHI 합자회사가 1961년 제작한 J3 제트엔진 앞부분 모습

 

스텔스 전투기용 제트엔진, XF9

현재 일본 IHI 에서 자체 개발하고 있는 전투기용 제트엔진은 XF9 이다. IHI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2018년 6월 첫 번째 시제품 XF9-1 을 일본 항공장비연구소(ASRC) 에 납품하였고, 현재는 성능검증까지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기술사양은 기본적으로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F-22 Raptor 용으로 제작한 미국 Pratt & Whitney 의 F119 제트엔진의 메커니즘과 크기 그리고 성능 모두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HI 제작 XF9 제트엔진 구성 (왼쪽) & IHI 제작 TVN (Thrust Vectoring Nozzle) 모습 (오른쪽)

일본 IHI 측에서 공개한 XF9 제트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동급 추력 엔진 중에 가장 가볍다는 것이다. 경량화를 위해서, 스텔스를 위한 매립형 공기흡입 덕트로부터 들어오는 공기를 압축하는 전단부에는 세라믹 복합소재, CMC (Ceramic Matrix Composites) 를 적용하였고, 후단부의 고열에 견뎌야 하는 터빈 날개는 레늄(Re)과 루테늄(Ru) 함량을 높여서 내열성을 강화한 니켈 단결정 합금강으로 제작하고, 터빈 날개가 고정되는 터빈 디스크는 니켈-코발트 합금 단조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XF9 의 무게가 다른 동급 엔진에 비해 얼마나 가벼운지는 공개되어있지 않다.
사실 전투기용 엔진은 스텔스 성능과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분사구의 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조절하여 추력의 조향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XF9 에는 IHI 가 자체 개발한 TVN3-1 분사구 조향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즉, CD (Convergent Divergent) 방식의 추력 편향 제어가 가능한 노즐, TVN (Thrust Vectoring Nozzle) 을 적용하여, 어느 방향으로든 20도 정도 틀어서 분사할 수 있다고 한다.

※ 우주 발사체용 로켓 엔진의 경우에는 연료공급 연결관만 고정되고, 엔진 자체를 통체로 움직이는 방식을 사용하며, 이 기술을 짐벌링 (Gimbaling) 혹은 스위블링 (Swiveling) 이라고 함. 미국 Space X 의 Merline 엔진의 경우에는 5도 정도 조향이 가능했고, 현재 개발 중인 Raptor 엔진은 15도 정도 조향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고 있음.

TVN (Thrust Vectoring Nozzle) 기술 예시

그 밖에도 XF9 엔진에 붙어 있는 발전기가 동급 엔진 중에 가장 높은 전압을 만들 수 있어서, 전투기에 장착된 고출력 전자장비 사용에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한다. 최근들어 멀리있는 표적과 대공 미사일 탐지용으로 장착되는 전투기용 레이더의 출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엔진 발전기 출력도 과거에 비해 더 중요해졌다.
※ XF9-1 엔진 성능 테스트 동영상 : https://youtu.be/GClXjVXsezo

 
※ 일본의 제트엔진 개발 업체는 IHI 말고도 여러 회사가 있는데, 사실상 일본에 있는 중공업 회사는 모두 만든다고 봐야한다. 군용 제트엔진은 군납 실적이 많은 특정업체가 독점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일한 기술이 사용되는 가스터빈 발전기 기술은 세계 시장이 크기 때문에 MHI (미쓰비시 중공업), IHI (이시카와지마 하리마 중공업), KHI (카와사키 중공업) 등 여러 업체가 가스터빈 발전기를 판매하고 있으며, 동일 업체가 해외의 민간항공기용 제트엔진도 OEM 으로 함께 제작하고 있다.
※ 한국이 제트엔진을 자체개발 한다면, 처음부터 군용 제트엔진 개발을 하는 성급한 방법보다는 민간기업의 가스터빈 국산화부터 점진적으로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사실 로켓엔진이든 제트엔진이든 이미 60~70년이 넘은 고전적 기술이고, 그동안 혁신적인 기술진보도 크지 않았다. 경량화와 내구성 향상을 위한 소재개발, 속도 향상을 위한 추가연소 메커니즘인 애프터버너 정도이다. 그나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민간항공기용 제트엔진, 미국 Pratt & Whitney 의 GTF (Geared TurboFan) 엔진 등의 신기술을 참고하여 차세대 엔진개발에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기술노하우를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대한한공은 Pratt & Whitney 의 GTF 엔진 정비/수리 협력기관으로 이미 기술협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두산에너빌리티 (구 두산중공업) 가 최근 가스터빈 시제품을 만들면서, 관련 기술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 기술은 두산이 2009년 9월 인수한 체코의 스코다 파워 (Skoda Power) 의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활용한 것이지 아직 완전한 기술 내제화는 갈길이 멀다고 한다.

+ 가스터빈 작동원리 설명 동영상 (제트엔진과 완전 동일) : https://youtu.be/n6e93XnWX10

 
※ 여담이지만, 해외에는 소형 제트엔진을 혼자서 취미로 만드는 사람도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만든 RC 비행기용 소형 제트엔진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엔진의 응용분야와 상품 기준이 다를 뿐이지 제트엔진 기술 자체는 이미 아무나 만드는 내연기관 엔진 수준인 것 같다. 아래 동영상은 소형부터 중형 사제 제트엔진을 혼자 만들고 있는 러시아 자전거 가게 아저씨 동영상이다. 한국어 자막도 지원하는데, 기계번역인지 표현이 무지 어색하지만 대충 내용은 알 수 있다. 영어가 되면 그냥 영어 자막으로 보길 추천. https://youtu.be/UGn27IkWO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