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반도체 제조 독점기업, 대만 TSMC
한국처럼 TSMC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 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가진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놈의 대중매체와 국뽕 유튜버들이 사실은 감추고, 말도 안 되는 정보를 창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개념의 창시자
TSMC 는 1987년 대만 공기업으로 설립된 반도체 제조 전문업체인데, 현재 누구나 알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개념을 사실상 세계 최초로 만든 회사이다. TSMC 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모든 반도체 업체는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함께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설계 전문 회사와 제조 전문회사가 나누어진 반도체 공급 생태계를 TSMC 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2022년 기준,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반도체를 대부분 TSMC 가 생산한다. 사실상 반도체 제조 독점기업에 가깝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9위 업체이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부 에너지 기업과 금융기업을 제외하면 시총 1위 업체로 성장했다.
※ 1987년 대만 상황은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때로, 이 당시는 한국도 대학생들의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시기이며,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해이기도 하다. 1987년 7월, 대만은 약 40년간 유지해오던 대륙의 공산당 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계엄령을 해제했다.
TSMC 의 설립자 Morris Chang (1931년 중국출생. 미국 MIT 졸업. 국적은 미국) 은 반도체가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창의적 반도체 설계 기술과는 별개로 반도체 생산 노하우 (= 반도체 생산 수율) 를 축적한 전문 회사가 필요한데 이런 회사는 대만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대만 정부의 지원하에 TSMC 를 설립하였다고 한다. TSMC 설립 당시 Morris Chang 은 이미 56세였다.
Morris Chang 이 미국에서 TI (Texas Instrument)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TI 가 설계한 새로운 반도체를 IBM 의 반도체 생산설비를 이용하여 싸게 제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의 파운드리 개념을 TSMC 로 실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미국의 주요 반도체 회사에 대만계 미국인이 많다. 예를 들면, 인텔의 유일한 경쟁상대 AMD 와 그래픽 반도체의 최강자 Nvidia 모두 핵심 엔지니어와 의사결정권자 대부분이 대만계 미국인이었고, 이러한 반도체 회사들이 초기 TSMC 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간혹 파운드리(Foundry)를 그냥 대단한 거 없는 하청기술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바보들일뿐이다. 일단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팹리스: fabless 회사. 제조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 가 특정 목적을 위한 반도체 설계도면을 그려서 (초기 설계 단계부터 어느 업체에서 생산할 건지가 설계에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함), TSMC 같은 파운드리 업체에 넘겨주면, 실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양산용 도면으로 처음부터 다시 그려서 마스크(mask : 포토 마스크라고도 함) 라는 걸 만든다. 이때 어느 정도 정밀도의 공정을 적용할지도 반영된다. 양산용 마스크가 만들어지면, 시험생산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반도체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생산 수율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 파운드리 업체는 생산 수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장비를 자체 개발하기도 하고, 각종 화학 신소재를 적용해보면서 높은 수율 달성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더구나 같은 반도체에 대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여 개선하면서, 수율은 점점 높아진다. 업계 알려진 바로는 같은 미세공정으로 생산한 경우라도, 경험이 가장 많은 TSMC 제품이 경쟁사 대비 성능 (전력소비, 발열 등) 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TSMC 없이는 EUV 노광장비도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도체 미세공정 생산경험을 통해 탄생한 장비가 세계 최초의 7 나노와 5 나노 공정용, EUV 리소그래피 장비라고 한다. EUV 반도체 장비 생산은 네덜란드 ASML 이 하고 있지만, ASML 이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 반도체 공정을 상상해서 EUV 장비를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다. ASML 은 TSMC 로부터 미세공정용 기술적 요구사항과 처리속도를 함께 분석하며 오랜 협업 끝에 현재의 EUV 리소그래피 장비가 개발되었다.TSMC 에 따르면, EUV 리소그래피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반도체 생산 공정에 적용하면서, 그 당시 가장 고집적 반도체 밀도보다도 20% 이상 집적도를 높이면서도, 전력소비는 1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EUV 장비를 사용하는 후발업체들은, TSMC 로부터 간접적이긴 하지만 기술적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현재 ASML 이 제조하는 EUV 리소그래피 장비의 40%는 TSMC 가 구매하고 있다고 하며, ASML 도 가장 큰 고객이자 공생 관계에 있는 TSMC 를 우선 공급처로 우대하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TSMC 는 대만 내에 총 8개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 2개, 미국과 싱가폴에 각 1개씩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총 12개 공장). 그리고 추가 공장을 대만에 1개, 미국 애리조나에 1개, 일본 구마모토에 1개 건설 중이다. 이렇게 수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재 전 세계는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TSMC 의 독점적 위치 때문이다.
사실상의 반도체 독점기업, TSMC
시스템 반도체와 자동차 반도체 및 군사용 반도체 대부분을 TSMC 가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도 TSMC 가 공장 증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달리 해결방법이 없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마구 생겨났던 얼굴 마스크 공장이 지금은 모두 폐업한 것과 같은 현상을 TSMC 는 우려하고 있다.
거기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과 일본도 이러한 TSMC 의 반도체 제조 독점력을 우려하고 있으며, 자국 반도체 업체에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반도체 부족 현상을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된 공장을 만들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방법으로는 반도체 부족현상은 적어도 2~3년은 지속될 것 같다고 한다. 더구나 오랜 노하우를 가진 TSMC 보다 더 좋은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도 아니였던 Apple 과 Google 같은 회사뿐만 아니라, Tesla 자동차까지 자사 제품을 위한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TSMC 의 입지는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한국 언론에서는 아무도 다루지 않지만, TSMC 가 반도체 제조분야 1위를 수십년간 유지하고 있는 최고의 경쟁력은 바로,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일단 TSMC 는 매월 실적을 발표하고 있고, 언제든 고객요구 정보를 공개하고 있으며, 미국 기업들 보다도 훨씬 더 투자자 친화적이다. 따라서 TSMC 가 발표하는 모든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는 업계에서 최고 수준이고, 고객의 기밀 유지는 기본이다. 장사의 기본은 신뢰이다. 이렇게 쌓인 신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TSMC 와 거래를 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엔지니어들을 미국 정부 지원을 받아 매년 300명 정도 TSMC 와 대만의 대학들이 만든 산학과정 (반도체 학과) 으로 유학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최근에서야 국내 대학에 반도체 학과 개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대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비메모리 분야의 더딘 기술발전도 TSMC 에게 유리
반도체 분야가 어떤 다른 산업보다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착각은 과거 일들이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탓이다. 사실은 최근 몇 년간, 메모리 분야에 비해 컴퓨터용 CPU 나 휴대폰용 AP 등의 시스템 반도체 성능은 크게 발전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모바일 기기 수요 폭증에 따라서, 프로세서의 연산속도 향상보다 발열억제와 소비전력 제한이 더 큰 기술이슈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이게 다, 크게 기술 진보가 없는 배터리를 전원으로 사용하는 탓도 크다. 어찌됐든, 이렇게 돈이 몰리는 대상이 바뀐 시장상황은 TSMC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양산업체에게는 과거의 비슷비슷한 양산화 기술을 재탕·삼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있고, 어부지리로 자체 반도체 설계기술도 없던 업체가 관련 기술자들을 확보하며, TSMC 같은 회사에 반도체 생산 주문을 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 TSMC 가 대만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시총 기준으로 30% 를 넘는다고 한다. 수치상으로는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약간 넘는다. 하지만, TSMC 는 한국 재벌기업과는 지배구조가 전혀 다르다. 실제 TSMC 의 최대 주주는 대만 국유펀드이며, 사실상 대만 국유기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생명보험과 삼성물산 이다. 정리하면 TSMC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만이라는 나라 전체에 투자한 것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사실상의 대만 국채에 가깝다.
※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미국-중국 신냉전 중심에는 TSMC 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대만 자체를 홍콩처럼 중국의 지방자치 행정구역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TSMC 도 중국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만을 포함한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는 생각이 다르다.
※ TSMC 는 2021년 3월, 일본에 3D·IC R&D 센터를 설립하고, 점점 기술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반도체 미세공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국적 인재를 모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SMC 보다 먼저 3 나노 공정을 개발하고 TSMC 와는 다른 3D 적층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TSMC 는 단독개발보다는 대만은 대만대로 R&D 를 수행하고, 일본의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와도 공동으로 R&D 를 하여 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 TSMC Japan 발표내용에 따르면, 현재 Edge Computing 용 프로세서 개발을 목표로 Cu-Cu 저온 접합 기술인 WoW (Wafer on Wafer) 방식과 CoW (Chip on Wafer) 방식으로 3D 적층을 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미국의 Chip 동맹에 대만-일본이 포함되는 이유이다.
※ 반도체 업계에서는 공급부족이 몇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재 사황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미세 공정을 누가 먼저 양산화에 성공하느냐와 같은 기술력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시대는 끝나고, 앞으로는 시장 친화적 가격에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양이 더 중요한 시대로 전환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TSMC 도 이러한 흐름을 눈치채고 경쟁사 대비, 미국과 일본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물량 경쟁에서는 중국 반도체 업체도 해볼만한 싸움이다.
※ 사실 반도체 만큼 팔기 좋은 상품도 없다. 반도체는 세상 모든 제품에 들어가고, 제품에 들어간 반도체는 고장이 안나더라도 사용성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2~3년에 한번 제품을 교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수십년간의 무한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소수의 업체가 돈을 쓸어 담았지만, 반도체가 점점 전략 물자화 되면서 향후에는 좋던 싫던 모든 나라가 반도체를 스스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